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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 Bear Market

Introduction

▚ 2021 self vs 2022 self

블록체인 산업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지 4개월이 되어 간다. 지금 와서 작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되돌아보면 많이 변한 것이 느껴진다. 2021년의 나는 일확천금의 꿈만 노리고 가즈아만 외치는 젊은 친구였다. 블록체인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바라봤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언제나 빈털터리가 돼 있었다. 2022년의 나는 이러한 실수를 다시 저지르지 말자고 결심하면서 블록체인 산업 공부를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2022년의 내가 블록체인 산업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지독한 하락장이 시작됐다. 하락장이다 보니 오히려 마음 놓고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작년처럼 급할 필요도 없었다. 마음을 가라앉히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점차 보이기 시작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번에는 4개월 동안 블록체인 산업을 공부하면서 느낀 점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 Balance Between the Two Extremes

정치 성향이 liberal과 conservative로 나뉘는 것처럼 블록체인 산업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두 극단으로 나뉘는 것 같다.

첫 번째 극단은 블록체인을 신봉한다. ‘블록체인 정신’으로 대표되는 탈중앙, 투명성, 보안이 기존의 산업을 파괴하고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봤단 글 중에는 심지어 무정부주의까지 갔던 사람도 있었다.

두 번째 극단은 블록체인을 믿지 않는다. 블록체인 산업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빈 껍데기라고 주장한다. 그저 돈이 되니까 블록체인 산업 기반의 스캠 프로젝트를 만들고 사람들을 낚는다고 주장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양극단 모두 어딘가 잘못되었다.

Desktop View 탈중앙은 모래성과 같다.

진정한 탈중앙은 프로토콜과 모든 dependency가 탈중앙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단 하나의 dependency만 중앙화를 지향한다면 그 dependency가 모든 탈중앙 프로토콜의 취약점이 되기 때문이다. 6,000개의 이더리움 노드 중 70%가 중앙화된 AWS 서버에 올라와 있다면 우리는 이더리움을 탈중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탈중앙이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과연 어디까지 탈중앙화되어야 하는가?

블록체인 산업이 아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이미 우리는 2017년에 투기로 얼룩진 블록체인 산업을 경험한 적이 있다. 블록체인 산업의 본질이 없었다면 2018년 이후의 블록체인 산업은 완전히 사라졌어야 했다.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기술은 도태되어야 하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경제가 균형 상태일 때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특정 관점으로 기울어지지 않은 균형 상태일 때 가장 효율적으로 산업을 분석하고 산업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아무리 균형을 잡으려고 해도 가끔은 극단에 빠진다. 그럴 때 이를 바로잡아줄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이 필요하다. 블록체인 산업에 대한 인사이트를 공유할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블록체인 산업의 길을 혼자 가서는 안 되는 이유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 Blockchain and Theoretical Economics

경제 대학원 수업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특이하게 석/박 과정뿐만 아니라 학부생도 참여할 수 있었던 대학원 수업이었다. 수업은 학생들이 조를 구성해 경제학 이론에 대한 논문을 분석하고 내용을 발표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대학원 수업에서 똑똑한 사람들에게서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다. 그러나 수업 자체는 집중하기 어려웠다. 학부 수준보다 훨씬 복잡한 이론과 모델을 공부하면서 마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렇게 복잡한 이론경제를 좋아하는 사람은 왜 좋아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신기하게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블록체인 산업을 공부하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

Desktop View 이론경제학과 블록체인 모두 하나의 세상을 만든다는 점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이론경제학은 ‘재미있다’.

이론경제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들은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정교한 경제 모델을 만든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뭉쳐 모델을 발전시킨다. 발전시킨 모델은 세상의 문제와 현상을 해석하는 데 사용된다. 그 과정에서 네트워크가 생기고 이론경제학 학계가 형성된다. 모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단순화된 세상을 하나 더 만드는 것과 같을 것이다.

블록체인 산업도 ‘재미있다’.

블록체인 산업도 이론경제학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정교한 기술을 기반으로 해킹 불가능하고 특정 주체에 권력이 집중되지 않는 블록체인 생태계를 만든다. 그리고 그 생태계 위에 탈중앙 거래소, 탈중앙 대출 플랫폼, 탈중앙 오라클 등 새로운 제품을 만든다. 다양한 사람들과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을 재미없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마치 이론경제학에서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것처럼.

블록체인 산업도 누군가에게 ‘재미있으니까’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지적을 받아도 2018년부터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론경제학과 다르게 블록체인 산업은 이제 시작이다.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 블록체인 산업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고. 이 믿음의 실현 여부가 블록체인 산업의 Mass Adoption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부터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 An Intrinsic Value of Blockchain Industry

블록체인 산업의 본질적인 가치가 뭔데?

블록체인 산업을 공부하는 4개월 동안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수도 없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블록체인 산업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상과 정반대인 현실을 맛보고 블록체인 산업을 가치 없는 껍데기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블록체인 산업의 본질적 가치를 발견했다.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NFT부터 생각해보자. 학교 선배님의 프레젠테이션에서 들은 것인데, NFT는 디지털 미술 시장에 존재했던 문제를 해결했다. NFT를 통해 디지털 아티스트는 자기가 만든 작품이 고유한 작품임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 그림을 그리는 화가처럼 자신의 디지털 작품을 고유한 작품으로 팔 수 있게 되었다.

또한 NFT로 만든 작품의 2차 판매 수수료 일부를 아티스트가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유명한 작가는 그림을 팔아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유명한 작가가 많은 그림을 그리면 그림의 가치가 감소한다. NFT를 통해 작가는 작품 판매의 2차 수수료를 얻음을 수 있게 되었고 유명한 작가는 다작을 하지 않고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NFT가 미술 시장의 딜레마를 해결한 것이다.

DeFi는 전통 금융의 복잡하고 지루한 절차를 코드로 간소화했다는 점에서 이미 세상의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내가 블록체인 산업의 첫 가능성을 DeFi 산업에서 찾은 것도 이 이유 때문이다. 며칠이 걸리는 대출 심사 과정을 클릭 두 번으로 줄일 수 있는데 이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을까?

또한 DeFi는 DeFi만의 창의적인 상품을 출시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프로토콜 간의 긴밀한 연결을 통해 전통 금융보다 훨씬 더 높은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다. 물론 폰지 사기와 같은 부작용도 있다. DeFi의 난이도를 낮추고 사기를 막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규제를 도입하는 것이 DeFi Mass Adoption의 과제일 것이다.

Desktop View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야 생존할 수 있다.

지금은 이렇게 블록체인 산업의 본질적인 가치를 정의했지만, 이것도 한순간에 바뀔 가능성이 있다.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는 지금 특정 문제를 항상 같은 스탠스로 접근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고정된 생각을 버리고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이 생존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아직 가능성에 불과하다. 규제 문제, 보안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럼에도 나는 그 가능성을 믿고자 한다. 믿음 단계에서 베팅한 사람이 더 많은 가치를 얻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믿음을 현실화하기 위해 내가 먼저 믿고 먼저 행동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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